

국내 최대 부동산 자산운용사 이지스자산운용이 매각을 추진하면서 시장의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이번 거래는 단순한 지분 이동이 아니라, 국내 자산운용업계 전반의 신뢰 구조를 시험하는 사건으로 번지고 있다.
이지스자산운용 매각은 글로벌 투자은행을 주관사로 한 프로그레시브 딜방식으로 진행됐다.
복수의 원매자를 경쟁에 붙여 단계적으로 가격을 끌어올리는 전형적인 ‘옥션형 매각’이다. 그 결과 글로벌 사모펀드 힐하우스(Hillhouse)가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표면적으로 보면 매각은 흥행에 성공한 듯 보였다. 가격은 올라갔고, 글로벌 자본의 관심도 확인됐다.
그러나 우선협상대상자 선정 직후, 거래는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흔들리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부각된 것은 인수 주체를 둘러싼 정서적·정책적 리스크였다.
힐하우스는 글로벌 사모펀드이지만, 국내 시장에서는 거래 초기부터 ‘중국계 자본’이라는 프레임이 빠르게 형성됐다. 이 자체가 사실 여부를 떠나 자산운용사 M&A에서는 매우 민감한 변수다. 운용사는 금융당국의 감독 아래 놓여 있고, 국민연금과 같은 공공 성격의 LP가 핵심 출자자로 참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수자의 국적과 자본 성격에 대한 해석은 곧 규제·정책 리스크로 전이될 수 있는 요소다. 이 지점에서 거래는 단순한 가격 경쟁의 문제를 벗어나기 시작했다.
이와 맞물려 정보 관리 이슈가 결정타가 됐다. 매각 과정에서 일부 펀드 관련 정보가 원매자에게 전달되는 절차가 적절했는지를 두고 논란이 불거졌고, 국민연금이 강하게 반발하면서 사안은 급속히 확대됐다. 자산운용사에서 정보 통제는 형식적인 컴플라이언스 문제가 아니다. 운용사의 실질적인 사업 기반은 회사 자체보다 LP가 맡긴 자산과 그 신뢰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정보 제공 절차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는 순간, 매각은 곧바로 “거래가 가능한가”의 문제가 아니라 “이 운용사가 신뢰를 유지할 수 있는가”의 문제로 전환된다.
이 과정에서 매각 주관사를 향한 시선도 달라졌다. 글로벌 IB 특유의 가격 극대화 중심 프로세스가 국내 자산운용사 시장의 특수성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했다는 평가다. 자산운용사 M&A는 제조업이나 플랫폼 기업과 달리, LP 정서·정보 통제·사전 합의 구조가 가격 못지않게 중요한 영역인데, 이 균형이 무너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결국 이지스자산운용 매각은 “얼마에 팔 수 있느냐”를 넘어, 누가 이 거래를 책임 있게 완주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성격이 바뀌고 있다. 그리고 이 질문의 답을 쥐고 있는 주체는 시장도, 주관사도 아닌 금융당국과 핵심 LP다.
자본시장법상 금융투자업자의 대주주가 변경될 경우, 금융당국의 대주주 적격성 심사는 필수 절차다. 그러나 이지스자산운용은 힐하우스를 대주주로 하는 변경 승인 신청을 아직 제출하지 않았다. 금융당국은 이를 단순한 일정상의 문제로 보지 않는다. 현재와 같은 혼란스러운 상황, 즉 우선협상대상자의 법적 지위가 흔들리고 이해관계자 간 분쟁 가능성이 남아 있는 상태에서는 심사 자체가 성립하기 어렵다는 판단이다.
금융당국 관계자들의 발언을 종합하면 메시지는 비교적 명확하다. 우선협상대상자 선정 이후에도 법적 분쟁 소지가 남아 있고, 다른 인수 후보자가 가처분 신청이나 소송에 나설 가능성이 있는 상황에서, 확정되지 않은 인수자를 전제로 대주주 적격성 심사를 개시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즉, 금융당국의 관점에서 이번 거래는 아직 ‘심사 테이블에 올릴 단계’에 이르지 못했다. 이로 인해 시장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다음 시나리오로 이동하고 있다.
힐하우스와의 거래가 지연되거나 구조 조정에 들어갈 경우, 초기 인수전에 참여했던 한화생명과 흥국생명 등 국내 금융사로 다시 협상 구도가 이동할 가능성이다. 금융당국 역시 이번 인수전을 사실상 미완의 상태로 보고 있는 만큼, 우선협상대상자 지위가 절대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지지는 않는 분위기다.
특히 흥국생명의 행보는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흥국생명은 이번 매각 과정이 불공정했다는 점을 문제 삼으며 법적 대응까지 예고한 상황이다. 매각가를 끌어올리는 과정에서 입찰 정보가 특정 원매자에게 전달됐다는 의혹, 그리고 이로 인해 우선협상대상자가 변경됐다는 주장까지 제기하고 있다. 이 사안이 법적 판단 영역으로 넘어갈 경우, 현 거래 구조는 유지되기 어렵다.
여기에 국민연금의 반발은 거래의 무게를 한층 더 키운다. 국민연금은 매각 과정에서 위탁자산 관련 정보가 사전 동의 없이 외부에 제공됐다고 판단하고, 위탁자금 회수까지 검토하는 강경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운용자산 규모 대비 금액의 크기를 떠나, 국민연금은 국내 자산운용사 생태계에서 상징성과 기준점 역할을 하는 LP다. 이 신뢰가 흔들리는 상황에서 금융당국이 성급하게 심사에 나설 가능성은 높지 않다.
결국 이지스자산운용 매각의 향방은 누가 가장 높은 가격을 제시했느냐가 아니라, 누가 금융당국·LP·시장을 동시에 설득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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